사회복지정책의 역사의 한축으로 빈민법 시대가 있습니다. 이는 엘리자베스 빈민법이 1601년 제정된 이후 19세기 초까지 이어진 빈민법을 말합니다. 특히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국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그러한 엘리자베스 빈민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 빈민법(The Elizabethan Poor Law of 1601)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영국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통해 커다란 사회 구조적인 변혁을 이룩한 국가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회적인 문제(도시 빈민 등)들도 발생했습니다. 이에 거의 최초로 국가가 개입하여 오늘날 사회복지정책의 밑바탕이 되는 빈민법을 제정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국가가 사회복지의 책임을 인정하기 시작한 최초의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법은 이전까지 빈민구제를 위해 제정된 여러 법령들을 집대성하여 공식화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영국 빈민법의 기본 토대가 되었습니다.
1) 발생 원인
16세기 영국에서는 해외 식민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상공업은 발달하였으며, 주로 모직물 공업이 발달했습니다. 인도에서 간디가 물레방아를 돌린 것도 영국의 모직물로 인한 자국 산업의 피해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미였습니다.
영국에서는 이미 14세기 중엽부터 양모를 가공하여 모직물을 짜서 유럽 각지로 수출하는것이 주력 산업이었습니다. 산업화로 인해 제조업은 더욱 발달되었고, 양모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기존 중세의 장원 경제가 무너짐을 의미했습니다. 토지소유자들은 이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고 자신의 토지에 목장을 세우고 양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의 농민들이 토지에서 쫓겨났고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던 부랑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임금노동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많은 교회의 수도원들이 해산하면서 교구 단위로 담당했던 구제사업도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수많은 빈민들이 도시에 넘쳐나게 되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이를 인지하고 이러한 빈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빈민법을 제정하기에 이릅니다.
2) 엘리자베스 빈민법(구빈법)의 유형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빈민을 세 유형으로 구분하여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구분은 오늘날의 선별적인 사회복지 시스템과도 어느정도 닮아 있습니다.
-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able-bodied poor): 작업장에서 일을 하는 조건으로 최소한의 구호를 제공하고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 감옥에 보내 처벌했습니다.
-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impotent poor): 주로 노인, 병자, 장애인을 노동능력이 없다고 봤으며, 구빈원에 수용하여 보호했습니다.
- 요보호아동(dependent children): 보호자가 없는 24세까지의 남자와 21세까지의 여자는 도제로 일을 시키며 보호했습니다.
3) 엘리자베스 빈민법의 한계
당시의 빈민법은 통제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국가는 빈민들을 불안한 사회적 요소라고 보고 이들을 억압하고 통제하여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이 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혹한 처벌이 뒤따랐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볼 때는 명백한 한계가 나타납니다. 오늘날의 복지제도는 인간의 권리적 측면에서 설명이 됩니다. 즉,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하나의 권리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반면에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단순히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빈민들을 통제하는 기능을 최우선으로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권리는 없고 오직 통제만이 존재하므로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최초로 빈민구제의 책임을 국가가 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빈민구제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세(국민의 세금)를 활용하여 충당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빈곤정책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정주법(The Settlement Act of 1662)
영국의 빈민법 중의 하나로 엘리자베스 빈민법과 비슷한 시기에 제정되었으므로 같이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빈민법이 만들어지면서 빈민들은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유한 교구로 이동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부랑인들이 생겨났고 특히 부유한 교구의 구빈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이에 빈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하고, 부랑자를 연고가 있는 곳으로 추방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정주 법입니다. 정주 법이 제정되어 모든 개인은 법적으로 정해진 지역 내에서만 거주할 수 있었고 타 지역에서 들어온 이주민들은 원칙적으로 법적 거주지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 또한 엘리자베스 빈민법과 마찬가지로 통제적 기능을 담당해온 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주법은 산업화가 진전됨으로 인해 산업도시로 많은 인력의 유입이 필요하게 되자 점차 그 규정이 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빈민의 주거 선택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인본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게 되면서 1795년 경에 사실상 폐지되기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엘리자베스 빈민법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제도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후에 많은 나라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설계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최초로 국가가 조세를 재원을 사회복지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복지의 역사나 정책의 역사를 살펴볼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 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엘리자베스 빈민법 이후로 계속해서 등장한 영국의 빈민법을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 빈민법 이후 영국의 구빈법(빈민법)의 역사 정리
영국의 구빈법(빈민법)의 역사 정리
영국은 빈민법 시대는 엘리자베스 1세가 빈민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세기 초까지 영국에서는 다양한 빈민법이 제정되어 영국 사회복지정책의 기틀을 마련해왔습니다. 본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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